캡틴의 항해록

– 확신을 남기지 않고, 좌표를 남긴다

이 글은 선언문에 가깝다.

다만 무엇을 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어떤 태도로 기록하겠다는 선언이다.

나는 이 블로그를 정답을 정리하는 공간으로 만들 생각이 없다.

오히려 확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조금 더 늦추는 장소에 가깝기를 바란다.

내 삶을 관통해온 사유의 축은 크게 세 가지였다.

신앙, 역사에 대한 탐구, 그리고 사유 그 자체에 대한 호기심.

이 셋은 서로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해왔다.

사람은 왜, 언제, 어떤 구조 속에서 자기 확신을 가장 쉽게 정당화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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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때, 다른 사람들이 찾은 답에 기대어 있었다.

​자유라는 말이 충분하다고 생각한 시기도 있었고, 공동체라는 이름이 균열을 덮어줄 수 있으리라 믿은 적도 있었다.

효율과 전문성이 감정과 갈등을 대신할 수 있을 거라 여긴 적도 있다.

그 답들은 그럴듯했고, 대부분의 경우 실제로 작동했다.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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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는 반복해서 같은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 답들이 언제, 누구의 몫을 조용히 밀어내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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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책임을 설명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었고, 공동체는 쉽게 침묵을 미덕으로 바꾸었다.

기술과 효율은 계산에 포함되지 않는 것들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배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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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악의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선의였고, 의도는 오히려 정반대였다.

문제는 선의가 구조가 되는 순간, 누군가는 설명 없이 탈락했다는 사실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어느 한쪽에 편하게 머무르기 어려워졌다.

그게 더 옳아서도, 더 잘나서도 아니다.

한 번 기대어 앉는 순간, 너무 쉽게 확신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확신은 언제나 빠르다.

그리고 그 대가는 대개 나중에, 다른 누군가의 몫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결론을 남기기보다, 좌표를 남기기로 했다.

나도 가보지 못한 도착지를 제시하기보다, 내가 항해하는 이 바다에서 어떤 물살이 위험했는지 어떤 항구가 안전했는지를 기록하는 쪽을 택했다.


기독교적 신앙은 이 태도를 더 단순하게 만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신앙은 나에게 더 많은 답을 주기보다는, 내가 말을 아끼게 만드는 기준이 되었다.

무엇이 옳은지를 말하기 전에, 내가 감히 판단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먼저 돌아보게 했다.

적어도 나에게 신앙은 판단의 권위라기보다, 쉽게 내가 옳아지지 않게 만드는 제약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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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말을 마치 내 생각과 고민이 남들보다 깊다 치열하다는 말로 쓰고 싶지 않다.

이건 선택이라기보다 결과에 가깝다.

계속해서 불편한 질문을 피하지 않다 보니 남게 된 위치다.

나는 이 항해의 끝에 정답을 남길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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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같은 바다를 건너는 누군가가 조금은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좌표로 지나온 물살과 항구를 기록하는 쪽이 확실히 지금의 나에게는 더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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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완성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끝까지 감당해야 하는 항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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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그 항해의 기록이다.

앞으로 남겨질 글들 역시 답이 아니라, 항해 중 남긴 로그에 가깝게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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