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리가 백제를 만들었다 – 한강, 금강, 그리고 바다로 열려 있던 국가
국가의 운명은 종종 왕의 선택이나 전쟁의 승패로 설명된다.
그러나 더 깊은 층위에서, 국가는 선택 이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 결정의 이름은 지리다.
백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도를 다시 보아야 한다.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온 정치 지도에서 국경선은 분명하지만, 그 선은 고대의 현실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
고대의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국경이 아니라, 이동이 가능한 경로였다.
그리고 그 경로의 핵심은 언제나 강과 바다였다.
한강은 한반도 중부를 가로지르며 서해로 흘러든다.
금강은 한반도 서남부를 흐르며 같은 바다로 이어진다.
이 두 강은 단순한 내륙의 수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륙 깊숙한 곳에서 생산된 물자와 사람들이 바다로 나아갈 수 있는 자연의 통로였다.
그리고 그 통로의 끝에는, 고립이 아니라 연결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해는 좁다.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넓은 바다처럼 보이지만,
고대의 해안 항해 기술을 기준으로 보면 그것은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아니라, 충분히 건널 수 있는 거리였다.
맑은 날에는 보이지 않을 뿐, 바다 건너편의 육지는 여전히 존재했다.
한반도의 서해안에서 출발하면, 산둥반도는 직선 거리로 수백 킬로미터에 불과하다.
항해 기술과 계절풍을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그것은 불가능한 거리가 아니었다.
이 지리적 조건은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한반도의 서부에 자리 잡은 집단은, 내륙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바다로 나아갈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국가의 성격을 결정하게 된다.
백제는 그 바다를 선택한 집단이었다.
백제의 초기 중심지는 한강 하구였다.
한강 하구는 단순히 강이 끝나는 지점이 아니라, 두 세계가 만나는 공간이었다.
강을 따라 올라가면 내륙의 평야와 연결되었고, 바다로 나아가면 다른 문명권과 이어졌다.
이 위치는 방어에는 불리했을지 모르지만, 연결에는 최적의 위치였다.
그것은 닫힌 공간이 아니라 열린 공간이었다.
수도가 웅진과 사비로 이동한 이후에도, 이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금강 역시 서해로 직접 연결되는 강이었다.
사비는 내륙 깊숙한 곳에 위치한 도시가 아니라, 바다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관문이었다.
수도의 위치가 바뀌었지만, 국가의 방향은 바뀌지 않았다.
백제는 여전히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국가는 자신이 위치한 환경의 제약 속에서 형성된다.
산맥으로 둘러싸인 내륙의 국가는 자연스럽게 육로를 따라 확장하게 되고,
강 하구에 위치한 국가는 바다를 통해 연결된다.
백제의 선택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지리의 결과였다.
한반도의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이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신라의 중심지였던 경주는 동해에 인접해 있지만, 동해는 서해와 성격이 다르다.
동해는 수심이 깊고 해안선이 단조로우며, 해안 항해에 적합한 섬과 만이 상대적으로 적다.
반면 서해는 수심이 얕고 해안선이 복잡하며, 수많은 섬이 존재한다.
이 섬들은 항해자에게 방향을 제공하고, 휴식과 보급의 거점을 제공한다.
서해는 고대 항해에 적합한 바다였다.
이것은 단순한 환경의 차이가 아니라, 문명의 방향을 결정하는 조건이었다.
서해에 면한 집단은 자연스럽게 바다를 따라 이동했고, 그 이동은 반복되면서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 네트워크는 특정 국가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세대에 걸친 이동과 교류의 축적 속에서 형성된 것이었다.
백제는 그 네트워크 위에 등장한 국가였다.
국가는 언제나 기존의 경로 위에서 형성된다.
아무도 오가지 않던 길 위에 갑자기 국가가 생겨나는 일은 없다.
백제가 바다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그 이전부터 그 경로가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경로를 따라 사람들은 이동했고, 그 이동 속에서 새로운 집단과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었다.
한강과 금강은 단순한 지리적 요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백제라는 국가를 가능하게 만든 조건이었다.
그 강을 따라 내려온 사람들은 바다를 만났고, 그 바다를 따라 나아가며 다른 세계와 연결되었다.
백제는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가 아니었다.
바다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위치에서, 국가가 된 집단이었다.
다음 편에서는, 이 지리적 가능성이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실제 기록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담로라는 이름으로 남은 거점들, 바다를 건너 오가던 사신들, 그리고 규슈와 이어진 연결 속에서,
백제는 점차 하나의 영토 국가가 아니라 해양 네트워크의 중심 노드로 모습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