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왕건과 서해 해양 네트워크
백제의 해양 네트워크는 660년에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 중심 일부는 일본으로 이동했고, 일부는 동아시아 해상 교역 속에 남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흐름은 한반도 서해 연안에서 계속 이어졌다.
그 흐름의 끝에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왕건이다.
왕건은 흔히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의 건국자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의 출발점은 내륙의 귀족 가문이 아니었다.
그의 가문은 서해 해상 세력이었다.
송악 –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
왕건이 성장한 지역은 송악, 오늘날의 개성 일대였다.
이 지역의 지형은 매우 특징적이다.
예성강이 서해로 흘러 들어가는 하구 지역이며 조수 간만의 차가 큰 서해의 특성상 해상 교통과 내륙 교통이 연결되는 거점이었다.
이런 공간은 고대부터 항상 비슷한 역할을 한다.
강을 따라 물자가 내려온다.
그 물자가 바다로 나간다.
그리고 다시 다른 지역의 물자가 올라온다.
이 구조는 백제가 성장했던 한강 하구와 매우 유사하다.
왕건의 가문은 바로 이 해상 교통을 장악한 집단이었다.
고려 건국과 해상 세력
왕건이 후삼국 전쟁에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바다였다.
후삼국 시대의 주요 전장은 내륙이었지만 군대와 물자의 이동은 강과 바다를 통해 이루어졌다.
왕건은 해상 교통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는 서해 해안과 섬들을 기반으로 빠르게 병력을 이동시키고 보급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능력은 내륙 기반 세력보다 훨씬 큰 전략적 장점이었다.
결국 왕건은 후백제와 신라 사이의 균형 속에서 결정적인 승자가 된다.
이것은 단순한 군사적 승리가 아니라 해양 네트워크 세력이 다시 한 번 한반도 정치의 중심으로 올라온 사건이었다.
서해 해양 축
한반도 서해 연안에는 공통된 패턴이 존재한다.
강 하구 / 넓은 갯벌 / 수많은 섬
이 지형은 농업에는 불리하지만 해상 교통에는 매우 유리하다.
서해의 조수 간만 차는 세계적으로도 큰 편이다.
이 때문에 수많은 자연 항구가 형성된다.
이 구조 위에서 해양 세력은 항상 등장한다.
백제 / 장보고 / 왕건
이 세 집단은 서로 다른 시대에 등장했지만 같은 공간 구조 위에서 등장했다.
고려 – 해양 국가의 또 다른 형태
고려는 완전히 해양 국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초기 고려는 분명히 해양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고려는 중국 송나라와 활발한 해상 교역을 했고 서해 항로를 통해 국제 교류를 이어갔다.
특히 벽란도는 동아시아 교역의 중요한 항구였다.
벽란도에는 아라비아 상인과 송나라 상인들이 드나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시기의 고려는 내륙 왕조라기보다 서해 교역 네트워크의 중심 국가에 가까웠다.
그러나 방향은 다시 바뀐다
그러나 이 흐름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고려 후기에 들어서면서 북방의 정치 문제가 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려 말 새로운 권력이 등장한다.
그 인물이 바로 이성계다.
이성계의 기반은 바다가 아니었다.
그의 기반은 북방이었다.
여진과의 전투 / 만주 국경 / 육지 군사력이 새로운 권력 구조는 한반도의 정치 방향을 다시 바꾸게 된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바다의 역할은 점점 작아지기 시작한다.
다음 편에서는 왜 조선이 해양 국가가 아니라 내륙 농업 국가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성리학과 사농공상이라는 질서는 단순한 이념이 아니라 국가의 구조를 바꾸는 힘이었다.